
지난 글 [팬텀 블레이드 제로 ① : 건축학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개발자 '량치웨이'와 S-GAME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실제 게임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투 시스템부터 시작해, 전작 지식 없이도 몰입 가능한 세계관과 핵심적인 게임 내 시스템, 그리고 최신 엔진이 구현한 기술적 완성도까지 톺아볼 예정입니다. 과연 《팬텀 블레이드 제로》가 각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현세대 액션 RPG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배경, 팬텀 월드
게임의 배경이 되는 '팬텀 월드'는 단순한 게임 세계관이 아닙니다. 팬텀월드는 14세기부터 17세기의 중국이라는 시공간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위에 무협, 스팀펑크, 사이버펑크, 다크 판타지, 호러 등 이질적인 장르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죠. 량치웨이는 이러한 혼합적 특성을 '쿵푸펑크(Kungfupunk)'라는 용어로 하여금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시각적 충격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중국 고대 건축물의 웅장함과 증기기관 기계 장치가 공존하고, 밤하늘에는 비행선이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이죠. 전통적인 무림 액션 게임의 배경에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어설프게 AI를 통해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어낸 가상세계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하지만 S-GAME 제작진은 바로 그 '시각적 모순(Visual Contradiction)'이야말로 세계관의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라고 역설합니다.
주목할 점은 접근성의 설계입니다. 이 세계는 《팬텀 블레이드 》시리즈의 기존 우주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완전히 독립적인 서사로 몰입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신규 유저층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명확히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죠.
장기적인 수련과 정신적 깨달음, 그리고 '협(俠)'이라는 인간적 덕목을 쌓아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정통 무협의 고결한 무공은, 근대적 기술의 침공 앞에서 무참히 해체됩니다. 인간의 사지를 자른 자리에 증기 구동 보철과 기계 의수를 박아넣는 순간, 일평생을 바쳐 수련하지 않은 자도 단숨에 무림 고수들을 압도하는 파괴력을 손에 넣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육체가 점차 기계 부품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무인들의 감정은 마모되고, 오직 효율만을 추구하는 살인 병기로 변해갑니다. 결국 가문과 문파의 명예를 중시하던 무림의 전통적 질서는 '누가 더 효율적인 부품을 장착했는가'라는 냉혹한 산업적 논리로 대체되며 팬텀 월드는 치명적인 균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디스토피아적 균열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핵심 모토인 '고도의 기술, 비참한 삶(High Tech, Low Life)'을 동양 오컬트와 결합하며 더욱 기괴한 양상으로 치닫습니다. 세계관 내 거대 권력 세력인 '기해(機海)' 등은 금지된 기술과 연금술을 결합해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개조하는 생체 실험까지도 서슴지 않죠. 지배 계층은 이 첨단 기술을 독점하여 영생과 절대적인 권력을 쥐려 하고, 그 과정에서 하층민과 일반 무인들은 기계 개조를 위한 소모품이나 실험체로써 착취당합니다. 기술의 오남용이 낳은 기괴한 괴물과 살인귀들이 강호를 뒤덮으면서, 낭만 가득했던 무림은 서서히 타락한 디스토피아로 변모했습니다.
주인공 혼의 서사: 운명과 기술이 충돌하는 팬텀 월드 안에서

게임의 주인공인 '혼(魂, Soul)'은 이러한 세계관의 비극과 균열을 존재 그 자체로 증명하는 캐릭터입니다.
원래 갈 곳 없는 고아였던 그는 전 강호를 뒤에서 지배하는 거대 암살 집단 '조직(The Order)'에 거두어져 무림 최고의 살인귀로 길러졌습니다. 혼은 조직 내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잔혹한 임무만을 완수하는 탑클래스 집행자였으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완벽하게 타겟을 제거하는 차가운 이성의 사냥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인간적인 온기를 나누었던 존재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좌상'뿐이었습니다. 혼이 압도적인 검술로 정면을 돌파하는 스타일이라면, 좌상은 영리한 지략과 정치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이 두 사람의 기묘한 연대와 대립은 혼의 인생을 뒤흔드는 가장 큰 축이 됩니다.
평온하던 혼의 삶을 산산조각 낸 것은 세계관의 절대자이자 조직의 수장인 '명주'의 의문사였습니다.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수장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평생을 몸바쳐 충성했던 조직원 전체가 순식간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냥꾼으로 돌변하면서, 혼은 전 무림의 공공의 적이 되어 쫓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홀로 거대한 추격대를 상대하던 혼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장기가 파열되는 치명상을 입은 채 죽음의 문턱까지 추락하고 맙니다.
다 죽어가던 혼을 건져 올린 것은 '장치'라는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의사였습니다. 일반적인 의술로는 그를 살릴 수 없음을 직감한 장치는 거대 권력 세력인 '기해'의 불법적인 기계 공학과 오컬트 연금술을 동원해 혼의 망가진 육체를 강제로 재조립합니다. 사지에 기계 보철을 심고 심장을 기계 장치로 연명하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이 저주받은 치료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혼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66일에 불과하며, 이 기간이 지나면 기계 장치가 그의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파먹어 괴물로 변하거나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혼은 복수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남은 수명을 통째로 저당 잡힌 셈입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서 다뤄질 비극의 깊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됩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혼은 복수를 위해 점점 더 강한 무림 고수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적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기계 육체를 더욱 업그레이드하고 오남용하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 인간성을 버리고 괴물이 되어가는 카운트다운을 스스로 앞당기는 꼴이죠. 붕괴한 무림의 질서를 바로잡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그가 휘두르는 압도적인 무공의 원천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인간성을 갉아먹고 생명을 담보로 잡은데다 '무림을 타락시킨 이질적인 기술'이기에 더 비극적입니다.
결론적으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더 강해지기 위해 기꺼이 인간성을 버리고 스스로 기계 괴물이 되어가는 무인들과, 그 기술을 독점한 거대 세력에 의해 정통 협객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과정이 시나리오 속에서 밀도 높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게임 플레이, 소울라이크와 다를까?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반개방형 구조로 지역들이 끊김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구역도 비선형적인 방법으로 열 수 있습니다.
S-GAME은 이 구조가 《할로우나이트(Hollow Knight)》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진행하다 보면 부서진 벽이나 잠긴 구역이 보이지만, 특정 보조 무기를 획득하기 전까지는 열 수 없습니다. 나중에 해당 무기를 얻으면 이전에 지나쳤던 구역으로 돌아와 숨겨진 비밀을 발굴하는 식입니다. 또한 벽 달리기 메커닉은 유비소프트의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고지대의 원거리 적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전술적 도구로도 기능합니다. 스텔스와 엿듣기 메커니즘도 있어 세키로를 연상시킵니다. 메인 스토리 완주에는 약 30~40시간이 소요되며, 뉴게임 플러스 모드도 지원합니다.

처음 트레일러를 봤을 때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소울라이크로 분류했습니다만 개발진은 그 분류를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블러드본(Blood Borne)》이나 《엘든링(Elden Ring)》보다 《데빌메이크라이(Devil May Cry)》가 훨씬 공정한 비교 대상입니다. 컨트롤러를 잡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브 리스트입니다. 각 무기마다 핵 앤 슬래시 스타일의 콤보 목록이 정리돼 있으며, 소울 게임의 영향 못지않게 《데빌메이크라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금방 체감할 수 있습니다.
기본 전투 구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공격은 버튼을 이어 누르며 콤보를 연결하는 '샤치(Sha-Chi)' 콤보 시스템으로 적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방어 측면에서는 기본 블록 자세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을 수 있지만, L1을 살짝 탭하면 패리가 발동하고 이후 '고스텝(Ghostep)'으로 적 등 뒤로 순간이동해 카운터를 날릴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에는 색 구분이 있어 전략적 판단을 요구합니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공격은 블록이 가능하며, 임팩트 직전에 패리하면 적의 스태미나를 대량 소진시키는 강력한 반격기가 발동됩니다. 빨간색 공격은 블록도 패리도 불가능합니다. 대신 공격 직전에 회피하면 적 쪽으로 달려들며 카운터어택이 나갑니다.
방어는 후퇴가 아닌 다음 공격을 위한 발판입니다. 정확한 타이밍에서의 패리는 부드럽게 카운터 콤보로 이어지며, 그 모멘텀의 전환 자체가 하나의 이어진 공격으로 보여집니다. S-GAME은 이 설계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본식 검술 게임이 명확한 공격과 방어의 '박자'를 강조한다면, 무협은 빠르고 연속적이며 서로 뒤엉깁니다. 얇은 검이 거대한 칼날을 정면으로 막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방어는 막는 것이 아니라 힘을 흘려내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으로 설계됐습니다.
샤치 시스템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패리에 성공하면 샤치 비용이 면제되고 상대방의 샤치를 대량 소모시킵니다. 패리나 고스텝을 수행할 때마다 샤치 에센스가 쌓이며, 이를 소모해 '파워 서지(Power Surge)'를 발동하면 상대방의 현재 방어 상태를 무시하고 직접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소울류 게임의 기력(Stamina) 시스템과도 흡사하지만, 소울류에서의 기력이 행동을 위한 캐릭터의 신체적 자원이며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 지표라고 생각하면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서의 샤치 시스템은 그 자체가 전투에서 발생한 부산물이자 전투의 리듬을 유지하는 동력원이 됩니다. 샤치를 소모하는 것이 곧 성공적인 전투를 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요.
소울류 게임과 명확히 구별되는 점도 있습니다. 레벨업에 따른 수치 성장 시스템이 없고, 격파한 적은 다시 부활하지 않습니다. 보스도 마찬가지여서, 2페이즈에 진입한 보스는 죽어도 1페이즈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습니다. 1페이즈와 2페이즈가 체크포인트처럼 기능하는 이 구조는, 플레이어가 어려운 보스전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크게 줄여줄 것입니다.
무기 시스템도 또한 방대한데요. 30종 이상의 주무기와 20종 이상의 '팬텀 엣지(Phantom Edge)' 보조무기를 조합할 수 있습니다. 빠른 도검으로 콤보를 시작하고, 중간에 보조무기로 교체해 스태미나를 회복하면서 압박을 유지하고, 사자머리 화염방사기 같은 팬텀 엣지로 마무리하는 식입니다. 무기 각각에 업그레이드 시스템과 스킬 진화 시스템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빌드를 갖추는 것이 공략의 핵심입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만난 전통 무술과 현대 기술
소울류 게임은 일반적으로 적을 하나씩 분리해서 전투에 임합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그 시선을 분산시키며 다수의 위협 속에서 싸우도록 유도합니다.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하도록 설계된 전투 시스템 덕분에, 다음 타깃으로 공중에서 뛰어넘으며 콤보를 이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쿵푸 영화의 영웅이 군중을 상대로 스타일과 정밀함을 유지하며 싸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진삼국무쌍》시리즈나 핵앤슬래시 계열의 게임처럼 처럼 수백 명을 쓸어담는 느낌은 아니지만 적당한 무리의 적을 화려하게 쓰러뜨리는 경험은 전에 없던 《팬텀 블레이드 제로》만의 플레이 경험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한 보스전에서는 보스 몬스터와 7명의 부하가 정교하게 협조하며 공격합니다. 부하들이 보스의 체력을 보충하는 구조여서 부하를 먼저 처리해야 했는데, 8명이 동시에 우아하게 찌르기를 날리는 그 장관에 넋이 나가 계속 피격당했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움직임이 "안무(choreography)"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수준입니다. 전투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이라기보다, 우아한 무도(舞蹈)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 게임의 보스전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제작 방식 자체에 있습니다. 소울프레임과 팀은 중국의 전문 용춤(龍舞)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연구했고, 이를 모션 캡처로 담아 보스 전투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모든 동작은 중국의 실제 쿵푸 마스터들이 직접 모션 캡처에 참여해 구현됐습니다. 상하이 모션 캡처 스튜디오는 와이어 액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높은 천장 구조로 특별 설계됐으며, 도니 엔(Donnie Yen) 스턴트팀 출신의 타니가키 겐지(谷垣健治)가 안무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취검 스타일도 구현했는데, "적이 술을 마시며 에너지를 축적하고, 만취 상태가 되면 움직임이 극도로 불규칙해지며 공격 패턴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취권(醉拳), 혹은 취검이라 불리는 이 무술 스타일은 사실 무협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눈으로 목격한 적 있는 기술입니다. 취권은 술에 취한 듯한 동작을 모방하는 실존 무술 '주권(醉拳, Zui Quan)'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제 음주와는 무관하게 비틀거리는 듯한 동선과 예측 불허의 무게 이동을 핵심으로 합니다. 이 무술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단연 성룡(房仕龍, Jackie Chan) 덕분입니다.
1978년 유안우핑(袁和平) 감독의 영화 《취권(醉拳, Drunken Master)》이 전 세계에 이 스타일을 알렸고, 이후 취권은 무협 영화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심지어 드래곤볼의 아키라 토리야마도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S-GAME이 2026년 4월 공개한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소울이 직접 취검 스타일로 싸우는 장면이 공개되었는데요. 성룡의 취권에 열광했던 세대라면, 그 감각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될지 기대해볼 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UE5의 활용: 성능과 비주얼 사이의 균형점
《팬텀 블레이드 제로》UE5(언리얼 엔진 5)를 기반으로 제작됐습니다. 단순하게 "UE5로 만들었더니 그래픽이 예쁘다"가 아니라 이 게임이 UE5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들여다보면, 100명 남짓의 소규모 스튜디오가 얼마나 영리하게 기술적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왜 UE5를 선택했는지부터입니다. 량치웨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언리얼 엔진 5는 우리 같은 소규모 팀이 대규모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해주거나, 적어도 소규모와 대규모 스튜디오 간의 격차를 크게 줄여줍니다. UE5 덕분에 렌더링 프레임워크를 처음부터 직접 구축할 필요 없이 — 일반적으로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한 개발 단계 — 바로 게임플레이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즉 UE5는 단순히 예쁜 그래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규모 팀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던 셈이지요.
원래 이 게임은 2017년 초기 기획 당시 언리얼 엔진 4 기반의 3D 게임으로 계획됐습니다. 2021년 텐센트의 투자가 확정되면서 UE5 기반으로 전환했고, 같은 시기 S-GAME은 《팬텀 블레이드 제로》와 함께 우주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대규모 프로젝트 《스텔라 사가(Stellar Saga)》도 UE5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그 첫 번째 결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UE5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게임스컴 2025에서 직접 데모를 플레이하고 기술 분석을 진행한 디지털 파운드리(Digital Foundry)는 "UE5 타이틀이지만 최첨단 기능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라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루멘(Lumen)과 버추얼 섀도우 맵을 사용하지 않고 베이크드 라이팅(baked lighting) 방식을 채택했으며, 레이 트레이싱 그림자와 반사는 웅덩이와 수면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해 성능 저하를 최소화했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Black Myth: Wukong)》이 UE5의 거의 모든 최첨단 기능을 풀로 가동하다가 콘솔 최적화에서 큰 진통을 겪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S-GAME은 그 선례를 보고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루멘에 대해서는 "음산하고 안개 낀 분위기를 너무 어둡지 않게 구현하는 데 유용하고, 나나이트는 프레임레이트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고품질 에셋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밝히면서도, 실제 구현에서는 성능과 비주얼 사이의 균형점을 철저히 계산해 적용했습니다.
디지털 파운드리의 분석에 따르면,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독특한 텍스처로 가득 찬 환경, 낡은 목재, 불규칙한 돌 표면, 빗물에 젖은 바닥 등 세부 묘사의 수준이 높습니다. 이 덕분에 세계 전체가 생동감 있고 유기적으로 느껴지며, 많은 현대 게임에서 보이는 반복적인 텍스처의 단조로움이 없습니다. 게임스컴 데모는 RTX 5090으로 구동되는 고사양 PC에서 DLSS를 활성화한 상태로 진행됐으며, 일부 미세한 끊김 현상은 있었지만 아직 개발 중인 빌드임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PC 버전에서는 DLSS 4 멀티 프레임 생성(Multi Frame Generation)을 지원해 GeForce RTX 그래픽카드 사용자가 더 높은 프레임레이트를 경험할 수 있으며, AMD와 NVIDIA 양쪽 모두에서 기술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PS5 버전에 대해서는 량치웨이가 직접 "4K 60fps, 혹은 안정적인 45~50fps를 목표로 적극적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의 콘솔 최적화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은 개발진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출시일이 다가올수록 그 궁금증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반응
세계가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 갖는 기대감은 먼저 숫자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TGA(The Game Awards) 2025에서 출시일이 공개된 이후,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에픽게임즈 스토어 합산 위시리스트가 단 15일 만에 1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TGA에서 공개된 모든 트레일러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디비니티(Divinity)》, 《바이오하자드: 레퀴엠(RESIDENT EVIL requiem)》 등 쟁쟁한 대작들을 제쳤습니다.
SteamDB 위시리스트 활동 순위에서도 당시 플랫폼 전체 1위를 기록했는데, 같은 시기 공개된 《툼레이더: 레거시 오브 아틀란티스(Tomb Raider: Legacy of Atlantis)》가 TGA 최다 공개 조회 타이틀이었음에도 《팬텀 블레이드 제로》가 스팀 순위에서 앞섰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였습니다. S-GAME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위시리스트의 50%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나왔으며, 유럽·미국 외에도 브라질, 터키, 중동 지역에서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중국 게임이라는 레이블을 달고 있음에도 이미 글로벌 기대작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ResetEra, Reddit 등 서양 주요 게임 커뮤니티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게임쇼에서 본 것 중 단연 최고"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퀄리티에 대한 반응이 강렬합니다. "탑 클래스의 애니메이션 품질", "소울라이크 중 내가 가장 기대하는 타이틀"이라는 평도 눈에 띕니다. 다만 영어 더빙 목소리가 어색하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중국어 원어로 플레이할 것 같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실제로 게임에 더 몰입하기 위해 어색한 자국의 언어 더빙 없이 원어로 플레이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보아오며 알 수 있듯이 이미 글로벌 팬들이 이 게임을 진지하게 소비할 준비가 됐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한국 커뮤니티의 반응은 조금 다르게 시작했는데요. 공개 초창기만 해도 중국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다소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산 게임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있는 탓이겠지요. 그러나 게임플레이 영상이 쌓이고 해외 리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사뭇 바뀌고 있습니다. 인벤은 "2023년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첫 공개된 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프로젝트 규모를 대폭 확장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루리웹과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전투 시스템과 비주얼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중국 AAA 게임이 정말 기대만큼 나올 수 있을까"라는 유보적 시선 역시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검은 신화: 오공》이 그 편견을 깬 선례가 있는 만큼,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 대한 기대치도 함께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물론 중국 내에서는 이 게임에 대한 반응이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일종의 자부심으로 표현됩니다. 위시리스트 1위를 중국 지역에서 유지하는 동시에 해외 50% 이상의 비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S-GAME은 내수와 글로벌 모두를 동시에 공략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죠.
이소룡이 쿵푸를 할리우드에 가져간 것처럼
2024년 《검은 신화: 오공》이 중국 스튜디오도 서구의 AAA 타이틀 게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팬텀 블레이드 제로》가 그 불꽃을 이어받을 차례입니다. 《검은 신화: 오공》이 서유기라는 고전 IP를 앞세워 중국의 신화적 서사를 보여줬다면,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쿵푸펑크'라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직접 제안하며 글로벌 액션 RPG 시장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선배가 문을 열었다면, 후배는 그 문 너머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리겠다는 선언입니다.
PS5와 PC로 동시 출시되며, PS5에서는 12개월간 콘솔 독점 기간이 적용됩니다. 이는 2027년 9월 이후 Xbox Series X|S나 닌텐도 스위치 2로의 이식 가능성을 열어두는 구조입니다. 소니가 중국·한국 개발사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독점 계약이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아시아 AAA 게임에 대한 플랫폼 홀더의 신뢰 표명으로 읽히기도 하네요.
량치웨이는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소룡(李小龍, Bruce Lee)이 쿵푸라는 단어를 할리우드에 가져갔던 것처럼, 우리는 무협의 정신을 전 세계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량치웨이는 민간 문화와 무형 문화재를 이어가는 것에도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게임 안에는 남중국의 사당 제사 의식, 광둥의 사자춤, 저장의 인형극, 푸젠의 신 행렬, 장시의 나오 가면, 쓰촨의 변검(變臉), 베이징 오페라, 황실 의례 등 중국 각 지역의 전통이 촘촘히 녹아 있으며, 이를 통해 무형 문화유산을 이어가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21년 게임스컴 트레일러 하나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지만, 이후 《붉은사막》 개발에 밀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고 '허깨비'라는 오명까지 얻은 펄어비스의 《도깨비(DokeV)》가 한국의 문화와 더불어 '도깨비'라는 언어 자체까지도 세계로 수출하려던 시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개발이 꾸준히 밀리는 바람에 전세계 팬들이 마음이 싸늘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붉은사막》 개발 이후 개발진들을 도깨비 개발에 힘쓰도록 한다는데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려보겠습니다. 량치웨이를 보면 그가 느끼는 자국의 문화를 비롯한 자부심, 전 세계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느껴지는데요. 이러한 한국 문화를 게임 세계관 안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시도를 하거나 자국의 문화를 전 세계로 퍼뜨리고 알리고 싶다는 개발자 및 회사가 한국에서도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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