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팬텀 블레이드 제로(Phantom Blade Zero) ① : 건축학도가 쏘아 올린 작은 공

by Eistory 2026. 5. 18.

 

 개발사 S-GAME이 2026년 9월 9일 《팬텀 블레이드 제로(Phantom Blade Zero)》를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짜, 예사롭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중화권에서는 '9(九, jiǔ)'는 '구(久, jiǔ)'와 발음이 같아 영원함, 장수,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또한, 9는 홀수 중 가장 큰 숫자로 '양(陽)의 극치'를 의미하고, 과거 중국에서는 오직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자금성의 방 개수를 9,999개로 맞추고 황제의 옷에 아홉 마리의 용을 새긴 것은 9가 '가장 높은 질서와 절대 권력'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9'가 게임의 설정과 맞닿을 때 생기는 묘한 긴장감입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주인공 '소울(Soul)'은 누명을 쓴 채 단 66일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으며 처절한 복수를 이어갑니다. 9는 '완성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서 더 나아갈 곳이 없어 변화가 시작되는 임계점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영원과 질서를 상징하는 '9'가 겹치는 날, 가장 불온하고 위태로운 '66일'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주인공의 운명. 제작진이 직접 밝힌 바는 없으나, 중화권 문화 특유의 숫자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는 계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첫 공개 트레일러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게 어떻게 실제 플레이 영상일 수 있느냐"며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영화처럼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합이 딱딱 맞는 검술 액션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연출된 영상'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게임스컴을 시작으로 SGF(Summer Game Fest), 그리고 최근 TGA 위크(The Game Awards Week)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프라인 시연에서 이 '미친 액션'이 검증되었습니다. 또한, 참여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빌드가 업데이트될수록 최적화와 완성도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인데요. 이제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실체 없는 기대작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고 2026년 하반기 가장 강력한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오늘은《팬텀 블레이드 제로》가 어떤 게임인지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팬텀 블레이드》 시리즈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아버지, 량치웨이 그리고 S-GAME

 량치웨이(梁其伟)는 업계에서 본명보다 '소울프레임(Soulframe)'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독특한 이름은 그의 이력인 '건축학'과 '게임 개발'의 교차점에서 탄생했는데요. 칭화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구조물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를 뜻하는 '프레임(Frame)'에, 영혼을 뜻하는 '소울(Soul)'을 더해 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내가 설계한 단단한 프레임에 창작자로서의 사상과 세계관의 생명력, 혼(Soul)을 불어넣겠다"는 의미로 이 아이디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현재 그가 이끄는 S-GAME의 'S' 역시 이 소울프레임에서 따온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 명칭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 유명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요. 2022년, 글로벌 히트작 《워프레임(Warframe)》의 개발사 디지털 익스트리머즈(DE)가 차기 대작의 타이틀을 《소울프레임》으로 확정하려다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명칭의 상표권을 쥐고 있던 량치웨이에 의해 막히고 말았습니다.

 

 당시 양사의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던 텐센트(Tencent)가 중간에서 상표권 매입 및 양도를 중재했으나, 그는 "이 이름은 내 창작 인생의 시작이자 스튜디오의 정체성 그 자체"라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타협하지 않는 그의 고집과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레인블러드》량치웨이는 알만툴의 에셋 사용 없이 모든 그래픽을 직접 그렸다!

 

 량치웨이는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10년, 소위 '알만툴'로 불리는 RPG 메이커(RPG Maker XP)로 개발한 인디 작품 《레인블러드(Rainblood: Town of Death)》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이 게임은 중국의 대형 P2P 및 자료 공유 커뮤니티 VeryCD에서 다운로드 400만 건을 돌파하며 예상치 못한 대흥행을 거두었고, 이와 같은 흥행은 량치웨이가 '어두운 무협 세계관'에 대한 시장의 강력한 수요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일대를 졸업한 후 뉴욕의 유명 건축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게임 스튜디오를 창업하는 모험을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교류하던 친구들을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량치웨이를 믿고 그들이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전업으로 합류하게 되어 2011년, 지금의 S-GAME을 창업할 수 있었습니다.

 

《레인블러드 무림외전: 신루》 한국도 게임을 돈 주고 사면 바보 취급을 받던 때가 있었다.

 

 S-GAME은 2013년 PC용 무협 액션 게임 《레인블러드 무림외전: 신루(雨血前传:蜃楼, Rainblood: Mirage)》를 출시합니다. 기존의 <레인블러드>가 턴제 RPG였던 것과 달리 세련된 콤보 위주의 2D 횡스크롤 액션 RPG로 출시했으며, 정교한 구조물 묘사와 수묵화 느낌의 채색, 고딕한 다크 판타지 분위기가 결합된 독보적인 아트 스타일을 지닌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인디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스팀에 진출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중국 내의 심각한 복제판 문제와 패키지 시장의 한계로 인해 상업적으로는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됩니다.

 

 이후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바일 게임 시장에 뛰어든 S-GAME은 《팬텀 블레이드》 모바일 시리즈를 통해 월 매출 4,000만 위안(한화 56억 원 가량)을 상회하는 대성공을 거두며 버팀목을 마련했습니다. 이 수익은 고스란히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본격적인 액션 RPG 개발의 밑천이 되었습니다.

 

《팬텀 블레이드: 집행자들》사실상 이 게임의 수익으로 회사를 굴릴 수 있던 게 아닐까

 

 특히 글로벌 시장에도 출시된 《팬텀 블레이드: 집행자들(Phantom Blade: Executioners)》은 단순한 모바일 게임을 넘어 "플랫폼의 한계를 시험하는 콘솔급 액션"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바일 특유의 자동 사냥을 배제하고 오직 유저의 정교한 콤보 조합과 패링으로만 승부하는 하드코어한 게임성이 특징이었죠. S-GAME은 이 작품을 통해 터치스크린과 패드 환경 모두에서 극상의 타격감을 구현하는 노하우를 쌓았으며, 이때 완성된 액션 메커니즘은 현재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직접적인 뼈대이자 원형이 되었습니다.

 

텐센트의 대규모 투자 유치, 중국산 AAA급 게임의 계보를 잇게 될까

 현재 전 세계의 기대를 받고 있는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2017년 초기 개념 기획 단계에서 한 차례 개발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모바일 시리즈의 연이은 흥행으로 독자적인 자금줄을 확보한 상태에서, 2021년 업계 최대의 거대 자본 텐센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S-GAME은 2022년 본격적인 개발 궤도에 올랐고, 곧 프로젝트를 언리얼 엔진 5 기반의 초대형 액션 게임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량치웨이는 후에 인터뷰에서 텐센트의 투자가 개발사의 창작적 자유를 절대 침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조건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모바일로 벌어둔 돈이 많아서 투자가 급하지 않다. 우리의 창작적 자유와 경영권을 100% 보장하지 않는다면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요.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개발과 글로벌 퍼블리싱 전반을 여전히 S-GAME이 독자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지켜낸 가장 큰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검은 신화: 오공》요리 보고 조리 봐도 AAA급 게임 맞다

 

 이러한 S-GAME의 뚝심은 최근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검은 신화: 오공》이 만들어낸 시대적 흐름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오공》이 서유기라는 거대한 고전을 바탕으로 묵직한 소울라이크풍 전투를 선보이며 '중국산 AAA급 게임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면,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그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질주합니다. 《오공》의 대흥행으로 형성된 중국발 AAA 게임에 대한 세계적인 신뢰와 기대감을 발판 삼아, 《팬텀 블레이드 제로》는 철저하게 '스타일리시한 하이퍼 액션'이라는 자신들만의 날카로운 무기를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2023년 5월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게임이 처음 공개될 당시만 해도, 그는 전 세계 유저들의 냉정한 평가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글로벌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의 우려를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이는 당초 소규모로 기획되었던 프로젝트의 규모를 지금의 대형 AAA급 형태로 과감히 키우는 결정적 도약점이 되었죠.

 

 현재 S-GAME은 약 100명 안팎의 정예 개발진을 중심으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 있습니다. 베이징 본사를 필두로 상하이의 모션 캡처 및 애니메이션 팀, 홍콩의 크리에이티브 아트 팀, 로스앤젤레스의 글로벌 퍼블리싱 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글로벌 외주 파트너까지 포함하면 총 참여 인원이 1,500명에 달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막바지 담금질을 이어가고 있죠.

 

10년의 뚝심이 빚어낸 칼날

 최근 량치웨이는 한 인터뷰에서 업계 동료작인 《클레어 옵스큐어: 엑스페디션 33(Clair Obscur: Expedition 33)》의 개발진과 나눈 대화를 언급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는 "콘텐츠를 무리하게 더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덜어내고 남은 핵심을 완벽하게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조건 볼륨이 큰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정제된 완성도의 게임을 추구하겠다는 그의 태도에서 묵직한 진심이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팬텀 블레이드 제로 ② : 시스템과 세계관의 심층 분석]에서는 본격적으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에 관해 현재까지 공개된 모든 정보와 인터뷰, 그리고 실제 시연 리뷰를 바탕으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가 어떤 게임인지 최대한 풀어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